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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일기/디디의 복지일기

청소년 프로그램

복지관에서 내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중에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프로그램의 주 대상은 학교에서 징계받은 청소년이다. 징계받은 청소년이 복지관에 와서 교육을 이수한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도 어려웠고 내가 준비하는 수업들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 의심도 들었다.

수업에 대해서 먼저 고민해보았다. 수업이란 대화라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으로 구분짓는건 어리석다.

수업에 참여한 모두가 배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하나의 주제로 대화를 해나가면서 알아가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걸 전달하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모르는 걸 알아가면서 느끼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대화라고 생각해보니까 듣는 사람이 있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말하는 사람은 주로 교육을 진행하는 사람이 말을 한다.

듣는 사람은 교육을 듣는 사람이 듣는다. 하지만 한쪽만 말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서로 말이 오고 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징계받은 청소년은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가 절대적으로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징계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이다. 복지관에서 교육을 이수하는 것도 처벌의 종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보통 말을 하지 못한다. 듣는 입장이다. 비난을 듣고 원망을 듣는다.

분명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듣는 입장이고 청소년이 말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이미 잘못을 충분히 인지하고 비난받을만큼 비난 받았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싫은 소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잘 될지 몰라서 두려웠다. 하지만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도와주고 나 또한 경험을 목적으로 시작한일이니 시도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어색했다. 청소년은 생각보다 말이 없었다. 핸드폰도 많이 좋아했다.

그래도 핸드폰을 내려놓고 내 말에 집중하도록 만드는게 내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야기를 하면 흥미로울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지금 청소년이 아니다. 그들만큼 그들의 흥미에 대해서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청소년이 흥미를 가질만한 이야기를 가장 잘 아는 대상을 앞에 두고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흥미있는걸 물어보고 그거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조용하던 아이도 말을 많이 해줬다.

여기가 어려웠다. 목소리를 듣는 것 까지는 해냈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그 목소리는 교육과는 멀어졌다.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하면서 통제하는걸 조금씩 배워갔다.

핸드폰을 굳이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지 않아도 핸드폰을 하는 아이들이 사라져갔다.

프로그램을 하면 할 수록 다양한 청소년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 있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과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일치한 적이 있다.

사실 나는 복지관에서 청소년 교육 이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면 분명 학교 선생님이 전문가이다.

왜 학교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복지관으로 보내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는 이 부분을 고민해보고 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