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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서재

펭귄 하이웨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런말을 한 적이 있다. 실제를 관찰하는게 아니라 창작물만 보고 쓴다. 이 말의 뜻은 관찰이 선행되어야 대상을 잘 그려낼 수 있다는 뜻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 관찰이 아니라 창작물만 보고 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다보니 애니메이션이 자기 자아밖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일상생활만 보내고 있고 인간관찰을 싫어하는 인간이 하고 있어서 오타쿠 소굴이 되는거라는 말을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이야기가 생각났다. 경험에서 우러나올수도 있지만 아이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꼭 순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순수하지만 또래사이에서는 영악하기도 하고 고민과 갈등의 토대가 순수할뿐이지 해결하는 방식이나 대하는 방식은 어른들과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게 느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이런 고민을 할까? 이런 결과를 낼까? 특히 주인공이 연구를 하는 방법에 있어서 문제를 작은 문제들로 쪼갠다.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닮은 문제를 찾는다. 이 부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어른들 사이에서 낯설게 보기가 유행한 것 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판타지 소설이라고 느껴졌다. 어른들도 목표로 하는걸 어린아이가 이미 이루고 실천하기 때문에 판타지 소설이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그냥 질투같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미 살고 있는 주인공에 대한 질투. 그리고 어린아이 중에 저런 아이는 없을거라는 내 꽉 막혀버린 생각인 것 같다. 소설을 읽고 내 생각이 더 넒어져서 좋다. 

 소설을 읽으면서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뜬금없는 가슴타령이 있었다. 여성의 가슴을 너무 언급해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봐도 불편하다는 지적이 종종 보이곤 했다. 근데 어쩌면 불편하다고 느끼는건 내가 어른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가슴에 대한 애정이 순수하게 그려진다. 주인공의 친구는 그러면 안된다는 의견을 내비치지만 주인공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조금 불편하다. 순수함을 표현할 대상은 많았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미있었다. 내가 지금 어떤 부분에 집중하고 있냐에 따라서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소설인 것 같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보고 짤막한 느낀점을 적고 비교해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 다만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생각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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